오늘도 나는 도서관에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브라우저를 실행시킨다.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컴퓨터.
인터넷 강국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에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컴퓨터가 몇이나 될까?
2001년 고 3때 인터넷 전용선을 설치하고 나서부터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컴퓨터는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바보정도로 인식하게 된 듯하다.
사람들이 보통 컴퓨터를 켜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인터넷에 접속해서 최신뉴스와 메일을 확인하는 것.
인터넷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상황을 옆 동네소식처럼 알 수 있고, 인터넷을 통해 천리 만리 떨어진 누군과와 실시간으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인터넷을 통해 몰랐던 지식을 얻고 인터넷을 통해 울음과 웃음의 감정을 느낀다.
인터넷은 따뜻한 인간사와, 냉혹한 현실, 한 개인의 일상까지도 담겨져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블랙홀과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인터넷은 지금 현실에 많은 가능성을 가져다 주었고 앞으로도 인터넷을 활용한 아이템은 보다 강력하게 가꾸어질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인터넷이 없던 세상은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모뎀을 쓰다 전용선을 처음 설치한 후 인터넷이라는 바다로 출항하고 항해하며 느꼈던 그 속도감은 실제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려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쾌감이었다.
인터넷은 점점 생활이 되어갔고 인터넷이 없는 세상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시절이었다.
그러다 개인사정으로 1년 가까이 인터넷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고 습관적으로 브라우저를 열지만 보이는 것은 답답한 화면 뿐.
한동안은 모든 것에 신경질이 나고 일조차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도무지 다른 무언가에 취미를 붙일 수 없었고 나는 인터넷이 되는 공공기관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정도가 지나니 인터넷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던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인터넷을 활용한 분야에 대한 공부보다 인터넷 자체에 빠져있었다는 사실까지도.
웹사이트 제작에 대한 책을 꾸준히 보게 된 것도 인터넷을 하려고 찾아간 도서관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짜증이 나니 열정비슷한 것이 마음 속에 생겼고 열심히도 자전거에다 책을 집으로 나르고 반납하기를 반복했다.
외국의 웹사이트를 그대로 따라만들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요소들을 표현해 보기도 하는 등 모든 것이 도서관의 컴퓨터 앞에서 이루어졌다.
아침 일찍 찾아가 문 열면 시작하고 점심먹으러 왔다가 다시 가서 문 닫으면 오는 것.
그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한 때는 웹사이트를 빠르게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느린 컴퓨터를 탓하기도 했지만 인터넷이 끊기고 나니 그 시절마저 부러웠다.
그런데 가끔 나를 괴롭히는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그 놈은 컴퓨터가 다운이 되었을 때라든지 어쩔 수 없이 재부팅을 해야할 때이던지, 항상 시스템을 다시 시작할 때마다 나타나 모든 것을 초기화 시켜버리는 성실한 녀석이다.
나의 눈물이 나올 것 같은 표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한 번도 자신의 임무를 잊은 적이 없다.
설정에 충실한 융통성 없는 녀석.
그 놈의 직업은 보안관이다.
하드보안관.
동네 도서관 컴퓨터의 사양은 그리 좋지 못하였기에 자주 오류가 발생하였고 리셋 버튼을 누르지 않는 이상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는 대책없는 상황을 불러 일으켰다.
하드보안관은 예외없이 출동하고 나는 어금니를 악물고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수 없이 만난 보안관 녀석은 나의 오랜 친구이다.
공공기관의 컴퓨터에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이 도서관에도 물론 탑재되어 있다.
얼마전 도서과장님의 책상위에 있던 이 녀석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 잔잔한 소름이 돋았다.
이놈, 소프트웨어인줄 알았는데 하드웨어이다. ;;
우리 집 컴퓨터 사양이 너무 좋지 않아 기숙사에 들고 오지 못했다.
인터넷은 커녕 컴퓨터 조차 없으니 항상 기숙사나 도서관의 컴퓨터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가끔 그와 다른 감정을 가진 채 마주친다.
나는 컴퓨터가 없어 외롭다.
컴퓨터가 없는 지금의 나에게 최대의 적은 하드보안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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